“협동사회경제의 바로미터”
원주를 가다
탐방을 시작하며...
2016년 8월25일 목요일, 강릉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가족들은 함께 원주를 방문했습니다. “지역순환경제활성화를 위한 사회적금융과 상호이용 모델 개발” 프로그램의 두 번째 시간이었죠.
우리가 중점적으로 살필 것은 [원주밝음신협을 중심으로 한 협력의 사례], [원주의 사회적금융 경제 사례 및 상호이용 노력방안], [협동카드 등의 사업 사례]였습니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이 태동하고 현재 협동사회경제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는 원주로 향하는 길이 사뭇 기대가 됐습니다.
AM 8:00 강릉시청 앞
대절된 버스에 오르니 강릉 신협, 한 살림, 마카조은 가족들이 보입니다. 버스가 원주를 향하는 동안 버스 안에서 김재관 대표가 얘기했던 방문목적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개별 협동조합의 성공을 보려는 게 아니라 서로 구성원들 간에 어떻게 협력 하는가 하는 것, 신협을 중심으로 어떤 계획 하에 네트워크가 움직이는가에 집중하길 바란다. 또 하나 강원도에서는 3년 전부터 지역화폐를 기획하고 있지만 실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원주는 2년 전 저예산으로 시범 사업을 시작 했다. 이 사례도 들어볼 것이고 네트워크 안에서 협동경제를 위한 공동의 의도, 어떻게 협동하면서 살아내는지. 또 상생 구조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 인 상호이용을 높이는 방안들에 대해 잘 들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AM 10:00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원주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협동조합 해설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지하상가 입구부터 이곳이 협동조합의 관문임을 나타내 듯 협동조합 광장이라는 간판이 눈에 띕니다. 부럽기도 하면서 소위 “있어 보인다!”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원주지하상가는 2013년부터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 <협동조합존>이라고 이름 붙여 교육과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전국각지에서 “협동조합”이라는 걸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사람들이 찾아오다 보니 이런 거점 마련은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게다가 지난 한 해 동안 이곳을 다녀간 사람이 만 명을 넘는다고 하니 하나의 참신한 관광 상품으로 키워나가는 것도 당연해보이고요.
부러움과 놀라움도 잠시, 곧바로 김선기 국장이 지역순환경제 활성화와 회원조직 간의 협력 그리고 교류 사업을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13년 전 원주 협동조합의 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권운동과 생명운동의 결합으로부터 시작된 원주 협동조합은 타인을 돕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창립 배경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원주에서 협동조합이 왜 잘 되는가에 대한 답으로는 서로 알아서 이용하고 협력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서 이런 이용관계들이 잘 형성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함을 느끼고 조합들은
대부분 어려운 탓에 원주 네크워크는 늘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내부 거래 활성화 TFT팀을 꾸리기에 이르렀다더군요. 상호 거래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윤은 또 다시 조합원들이 속해있는 지역 사회로 순환되도록 계속된 고민과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도 했습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의 본토에서 역시 이런 고민과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 한편 놀라웠죠. 고민은 이뿐 만이 아닌 듯 했습니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이 제정되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법과 제도 변화에 따른 대응도 필요할 거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에 대한 답은 한 가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답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의외의 답을 말하더군요. 이미 스스로에 대한 답은 그 어떤 것보다 명확히 정립한 줄 알았는데 말이죠.
자신들이 어떻게 잘 해왔는지에 대한 사례발표가 아닌, 앞으로의 고민에 대한 화제가 계속되자 우리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과거는 이미 수많은 채널을 통해 다양한 정보로 접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우리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의 열쇠가 아닐까 싶더군요. 그리고 협력관계에 대한 방법과 영향력에 대해 연구하고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여에 걸친 강의 중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회적 경제는 곧 마음이다. 돈을 벌어가는 구조보다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사회적경제와 우리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PM 12:00 우리 집을 못찾겠네요
긴 강의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는데 우리 집을 못찾겠네요? 우리 집을 왜 원주에서 찾냐구요? [우리 집을 못찾겠네요]는 원주협동조합 운동의 산증인인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최정환 이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이름입니다. 그는 1997년 IMF시절 밝음신협의 이사장으로 경영위기를 극복해 냈다고 합니다. 밝음신협은 원주 협동사회네트워크의 구심점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들이 위기를 극복해 낸 과정은 오후에 이어진 강의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의 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였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찌개에 들은 고기며 밥의 양이 실한 것 같더군요. 최정환 이사장은 협동조합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우리를 살뜰히 챙기는 걸보니 부러 양을 좀 더 푸짐하게 차려준 듯 싶습니다. 꽤 규모가 있는 식당을 따로 종업원들 두지 않고 두 내외가 운영하는 것도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죠. 협동조합의 창시자인 장일순 선생이 그가 처음 식당을 차릴 때 “3년만 쟁반을 들고 직접 나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셨던 말씀 때문이라는 것을 요. 아마 그렇게 식당에 찾아 온 사람들을 가장 밑에서부터 섬기고 대접해 온 25년의 세월이 이 식당의 유지비결이자 이곳이 왜 협동조합의 사랑방이 되었는가를 증명해 주더군요. 그렇게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밝음신협으로 향했습니다.
PM 1:30 밝음신협 교육장
원주협동사회네트워크의 토대가 되었고, 지금도 주요구심점이 되고 있는 밝음신협 중앙본점은
건물은 오래되고 낡아보였지만 이들 외에도 각 층마다 다양한 단체와 기업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교육담당 강사는 내내 회의적인 얘기와 크게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로 우리를 조금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 말 속에는 원주 협동사회경제에 대한 깊은 애정과 높은 기대감이 깔려 있음을 깨닫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출자규모로만 본다면 협동사회 경제를 이끌어갈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진 않고 이제 다시 조금씩 걷기 시작하는 단계라는 표현으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더군요. 전국 900여 개의 신협 중 100등 정도일 뿐이라는 겸손한 표현과 함께 과거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 주신 덕에 많은 분들이 여전히 원주를 찾아주시는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밝음신협의 45주년을 영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는데 영상 속에서 밝음신협이 IMF를 이겨낼 수 있었던 궁금증도 풀어지더군요. 지역의 서민들이 예금을 빼지 않고, 조합원 탈퇴를 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준 덕분이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 어떤 누구도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지만 밝음신협이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준 데 대한 보답 그리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곳이라는 절실함에 망해도 믿어보겠다 했다는 겁니다. 신협의 의미가 무엇인지, 협동조합이 나의 삶에 있어 어떤 관계를 미치는지를 아는 분들은 믿고 기다려 준 서민들의 힘으로 밝음신협은 살아났고 그것이 이들을 지금껏 버티게 한 힘이었습니다. IMF이후 2005년까지 배당을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2003년 원주협동사회네트워크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탓에 질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어려울수록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더 큰 협력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겁니다.
사업적인 성공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불이 꺼지지 않는 것 만큼은 자랑할 만하다고 합니다. 빨리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체력이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 속에 그들 역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조합회원들의 주거래 계좌를 밝음신협으로 유도하는 내부거래 활성화를 꼽았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열쇠는 눈앞의 이익보다 관계의 중요성과 신뢰임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원주밝음신협은...
1971년 지역 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주민 32명이 출자해 설립한 신용협동조합으로 1980년 구급차를 소방서에 기증해 전국최초의 119구급대를 탄생시켰고 2003년엔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설립을 지원해 지역 협동조합 운동이 뿌리내리는데 큰 기여를 해오고 있다.
PM 2:30 밝음신협 교육장2. <갈거리협동조합이야기>
노숙자들을 돕기 위한 활동들은 기존에도 많이 있어왔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바로 빅이슈 잡지의 제작이고요. 원주에는 이보다 더 재기에 대한 자극과 도움을 주는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노숙자와 저소득층에게 200만원 한도 내에서 무담보 금융대출을 해주는 신용협동조합인 [갈거리협동조합]이죠. 새로운 협동조합의 모델이자 금융복지시스템의 등장인 셈입니다.
갈거리협동조합의 모태는 곽병은 원장이 설립한 [갈거리 사랑촌]입니다. 이후 무료급식소인 [십시일반]이 세워졌고 [원주노숙인쉼터]등으로 하나 둘 사회 복지시설을 늘려갔습니다. 그들이 다시 재기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손수레와 붕어빵 기계등을 지원하고 자금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했죠.
노숙인들이 하루하루 번 돈을 저금하게 했고 신용협동형태의 [갈거리협동조합]에 이르게 된 겁니다. 이들이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 즉 노숙자와 저소득층은 게으를 거라는 편견,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부수기라도 하듯이 갈거리의 대출 상환비율은 95%가 넘는다고 하고요.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마흔 명 정도의 노숙자들이 독립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이 이제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PM 4:00 원주푸드협동조합
빡빡한 일정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원주푸드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는 [행복한 달팽이] 식당을 찾아갔는데요. 이들은 일반 상가가 아닌 근로자복지종합센터에 위치하고 있어 꾸준한 매출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가격은 4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이었습니다.
이들은 원주지역 22개 초`중학교에 원주산 무농약쌀인 토토미를 공급했고 [행복한 달팽이]는 결식아동급식지원사업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로컬푸드 식당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식품 가공업을 시작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반찬과 도시락 사업으로 재기해 지금까지 온 겁니다. 이들은 2014년에 [원주푸드종합센터]를 마련해 로컬푸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제대로 된 한끼 식사조차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저렴하고 질 좋은 음식을 대접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이들. 하지만 조합원들의 삶의 질이 우선이기 때문에 주말과 영업 외 시간의 업무는 조합원의 의사를 가장 중요하게 반영한다고 합니다. 조합원의 삶과 만족도가 충족이 되어야 지속되고 더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당연한 정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식당이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하는 탓에 우리도 서둘러 오늘의 탐방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동행하며 수고해 준 협동조합 해설사와 인사를 나누고 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원주에는 협동조합 해설사가 있다!
원주로 협동사회경제 관련 방문이 늘어남에 따라 이것을 하나의 여행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협동조합 해설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게 된 거죠. 원주의 협동조합을 보고 사회적경제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해설사를 통해 일정을 잡으면 훨씬 수월하고 체계적으로 탐방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소정의 비용은 지불하셔야 한답니다.
-협동조합해설사 박경남씨-
PM 7:00 강릉도착, 탐방을 마치며...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주탐방을 통해 모두 얻은 것이 있었을 겁니다. 다만 협동사회경제의 활성화나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잘 살아내는 것은 원주식이 아닌 강릉의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았습니다. 경제활동은 여러 형태와 방법이 두루 있습니다. “돈”만이 목적이라면 협동조합이 아닌 다른 조직을 찾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 같습니다. 협동조합의 단점은 오히려 장점보다 많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협동조합들의 이유는 좋은 사업아이템과 탄탄한 재무구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부족해도 버틸 수 있는 건 관계와 믿음이라는 힘 때문일 겁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성공하지 못해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나와 함께 해줄 사람이 바로 협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음을 더욱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본 기획탐방 기사은 파랑달 협동조합에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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